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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0322 | 운영자 | 2026-03-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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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22:1-6절 개역개정1.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다가오매 2.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도로 죽일까 궁리하니 이는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함이더라 3.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4.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줄 방도를 의논하매 5. 그들이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6.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예루살렘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지 며칠이 지났습니다. 예수님의 일과는 규칙적이었습니다. 낮에는 성전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치셨고, 백성들은 그 권위 있는 말씀을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이른 아침부터 성전 마당을 가득 메웠습니다. 밤이 되면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으로 향하셨습니다. 그곳은 치열한 논쟁과 사역 끝에 얻는 짧은 안식의 공간이자, 다가올 고난을 준비하는 기도의 처소였습니다. 하지만 성전의 화려한 외벽 뒤편에서는 차가운 음모가 소용돌이치고 있었습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눈엣가시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당장이라도 잡아 죽이고 싶었지만, 백성들의 눈치가 보였습니다. 곧 유대 최대의 명절인 유월절과 무교절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이 시기에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는 민란이 일어날 수도 있었고, 그렇게 되면 로마 군대가 개입해 자신들의 기득권이 흔들릴까 두려웠습니다. "이번 명절만큼은 피하자"며 기회를 엿보던 그들에게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손님이 찾아옵니다. 그 손님은 바로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였습니다. 성경은 이 충격적인 사건의 배후를 단 한 문장으로 설명합니다.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다." 사탄은 공생애 초기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하다 실패한 뒤, '얼마 동안' 떠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습니다. 사탄은 처음에는 베드로의 인간적인 정을 이용해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막으려 했으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꾸짖음에 물러나야 했습니다. 이제 사탄의 화살촉은 유다를 향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영적 원리를 발견합니다. 사탄은 강제로 사람의 마음을 점령하지 못합니다. 유다의 마음속에 이미 자리 잡았던 돈에 대한 탐욕, 혹은 정치적 메시아에 대한 실망감이 사탄이 들어올 '틈'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유다는 스스로 마음의 빗장을 풀고 어둠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대제사장들을 찾아가 "예수를 넘겨주면 얼마를 주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쾌재를 불렀습니다. 돈으로 맺어진 이 불의한 동맹은, 무리가 없을 때 은밀하게 예수님을 넘겨주기로 약속하며 구체화하였습니다. 배신이 무르익어 가는 동안,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준비하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고 말씀하시며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 방을 마련하게 하셨습니다. 유월절은 과거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집마다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발라 죽음의 재앙을 피했던 그 밤을 기억하는 의식입니다. 식탁에는 급히 떠나느라 부풀리지 못한 빵(무교병)과 고통의 세월을 상징하는 쓴 나물, 그리고 희생된 어린 양의 고기가 놓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식탁에는 수천 년간 이어진 유월절의 모든 예표를 완성할 '진짜 실체'가 앉아 계셨습니다. 바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곧 십자가에서 흘릴 피와 찢길 살이 인류를 죄의 종노릇에서 해방할 유일한 길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부터 이 완벽한 구원 계획을 세우셨고, 이제 그 시간이 임박한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우리에게 엄중한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 계획은 사탄의 방해나 인간의 배신으로도 결코 막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가룟 유다의 불의함과 대제사장들의 악의조차 선용하셔서 십자가의 승리를 끌어내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주권이 인간의 책임을 면제해 주지는 않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유월절 식탁을 준비하는 영광스러운 통로가 되었지만, 유다는 자신의 욕망에 마음 문을 열어 멸망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나의 마음 문을 누구에게 열어 줄 것인가? 나의 욕망인가, 아니면 주님의 세밀한 음성인가?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계획 속에서 '준비하는 자'로 쓰임 받을 것인지, 아니면 '거스르는 자'로 남을 것인지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님의 그 크신 사랑 앞에, 오늘 우리의 마음을 겸손히 내어드리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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