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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0301 | 운영자 | 2026-03-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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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20:21-26절 개역개정21. 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나이다 22.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 하니 23.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이르시되 24.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누구의 형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25.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6. 그들이 백성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놀랍게 여겨 침묵하니라 예수님은 매일 성전에서 천국 복음을 전하셨지만, 기득권을 위협받은 종교 지도자들은 독이 바짝 오른 뱀처럼 예수님의 틈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정교하게 설계된 세 가지 '덧'을 들고 예수님께 다가왔습니다. 가장 먼저 투입된 이들은 '정탐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아주 공손한 태도로 위장한 채 치명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아닙니까?" 이것은 외통수였습니다. "내라"고 하면 로마의 압제에 신음하는 유대 백성들의 원성을 살 것이고, "내지 마라"고 하면 즉시 반역죄로 로마 총독에게 넘겨질 판이었죠. 예수님은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오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물으셨죠. "여기 새겨진 얼굴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그들이 "가이사의 것입니다"라고 답하자, 주님의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세상에 살면서 시민의 의무를 다하되, 정작 네 영혼과 생명이라는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존재 자체는 오직 하나님께만 드리라는 준엄한 선포였습니다. 정탐꾼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어지는 공격은 부활을 믿지 않는 합리주의자들,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계대 결혼법'이라는 율법을 비틀어 해괴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일곱 형제가 한 여자와 차례로 살다 죽었다면, 부활 때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됩니까?" 부활의 비현실성을 조롱하려는 심보였죠. 예수님은 그들의 좁은 시야를 단번에 넓혀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삶은 이 세상의 질서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곳엔 시집장가 가는 일이 없고, 죽음이 없기에 천사와 같다." 또한,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상기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시체의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있는 자들의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육체는 흙으로 돌아갔을지언정, 그 영혼들은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여전히 살아있다는 부활의 실재를 선포하신 것이죠. 이제 공수는 전환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되물으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다윗 같은 강력한 군사적 영웅이 나타나 로마를 물리치길 바랐습니다. 메시아를 '정치적 해결사'라는 틀에 가두어 버린 것이죠. 예수님은 시편을 인용해 다윗조차 메시아를 '내 주님'이라 불렀음을 증명하셨습니다. 메시아는 단순히 다윗의 혈통을 이어받은 인간적인 왕이 아니라, 태초부터 계셨던 하나님의 아들이자 만유의 주재이심을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고정관념보다 훨씬 크신 하나님을 보라는 초대였습니다. 이 세 번의 논쟁을 관통하는 핵심은 명확합니다. 1. 우선순위: 세상의 질서를 존중하되, 내 마음의 중심은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2. 소망: 이 땅의 한계에 갇히지 말고 영원한 부활의 세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3. 믿음의 틀: 내가 원하는 방식의 하나님이 아니라, 성경이 증언하는 크신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혹시 내 생각과 전통이라는 좁은 틀 속에 하나님을 가두어 두고 있지는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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