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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222 운영자 2026-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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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20:9-15절 개역개정

9. 그가 또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시니라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10.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11.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12.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 종도 상하게 하고 내쫓은지라

13.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14.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15.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제공: 대한성서공회

우리는 흔히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선언을 삶의 훈장처럼 여깁니다. 내가 일군 성취, 내 소유의 자산, 그리고 내 앞날을 결정할 권리가 온전히 나에게 있다고 믿을 때 비로소 현대인은 안도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러한 권리 의식이 종종 삶의 근원적인 질서를 망각하는 오류에 빠지게 합니다.

2,000년 전 예루살렘 성전에서도 이와 유사한 권위의 충돌이 있었습니다. 당시 기득권을 쥐고 있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며 날선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의 권위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는 예수님의 되물음에, 그들은 진실을 말하면 자신들의 불신이 탄로 나고 거짓을 말하면 백성들의 저항이 두려워 "알지 못한다"며 비겁하게 숨어버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통해 소유권의 실체와 그 주객전도가 가져올 서늘한 결말을 계시하셨습니다.

 

비유는 한 주인이 포도원을 정성껏 조성한 뒤 소작농들에게 맡기고 타국으로 떠나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포도원이라는 존재의 기원입니다. 포도원은 농부들의 노력으로 일궈진 것이 아니라, 주인이 모든 기반을 닦아놓은 뒤 그들에게 위탁한 공간입니다.

 

성경적 관점에서 이 포도원은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 공동체이자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세상을 의미합니다. 소작농으로 비유된 지도자들은 그 공동체를 잘 돌보라는 사명을 부여받은 관리자들입니다. 이는 현대의 우리에게도 동일한 실존적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누리는 생명, 시간, 재능은 본래 우리의 것이 아니라 창조주로부터 잠시 빌려온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이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언약 공동체를 직접 세우셨으며, 인간은 그분의 목적을 위해 삶을 관리하도록 보냄받은 '청지기'라는 고백에서 시작됩니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우리를 인생의 '독점적 소유주'라 부추기지만, 이 비유는 우리의 정체성이 본질적으로 '관리인'임을 일깨웁니다. 주인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순간, 관리인의 직분은 탐욕의 도구로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비유 속 농부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기묘한 심리적 왜곡을 경험합니다. 소작료를 받으러 온 주인의 종들을 때리고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이들의 행태는 단순한 무례를 넘어선 권리 착각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전하러 온 선지자들을 박해했던 역사는, 바로 이러한 '심리적 소유권'의 비극을 투영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특권의 독성'을 발견합니다. 처음에는 은혜로 주어졌던 관리인의 직분이 시간이 지나면서 마치 당연한 권리인 양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망상은 감사가 있어야 할 자리에 교만을 심고, 거룩해야 할 성전을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는 '강도의 소굴'로 전락시킵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리는 은혜가 익숙함이라는 덫에 걸려 있지는 않은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단순히 소유의 유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라는 구체적인 열매입니다. 열매 맺지 않는 특권은 공동체를 부패시키고 결국 자신을 파괴하는 독이 될 뿐입니다.

 

주인은 마지막 수단으로 '사랑하는 아들'을 보냅니다. 하지만 농부들은 경악스러운 논리를 펼칩니다.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 것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상속자를 제거하면 포도원이 자신들의 차지가 될 것이라는 이들의 발상은 지극히 어리석고도 잔혹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마지막 기회마저 거부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 했던 종교 지도자들의 음모를 적나라하게 폭로합니다.

 

하나님의 인내에는 끝이 있으며, 그 인내의 끝에는 반드시 엄중한 결산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유의 결말은 단호합니다.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누가복음 20:15~16)

 

이 선언은 주후 70, 예루살렘의 처참한 함락과 멸망은 하나님의 참으심이 끝나는 지점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가 되었습니다. '결산의 때'가 미뤄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취소된 것은 아닙니다. 역사적 성취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한 무게의 영적 경고로 다가옵니다. 맡겨진 것을 제멋대로 사용하며 상속자의 권위마저 부정하는 자에게는, 결국 그 모든 특권이 회수되는 엄중한 책임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비유가 끝났을 때,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은 그 화살이 자신들을 향하고 있음을 즉각 알아차렸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추악한 내면을 마주했음에도 회개 대신 예수님을 즉시 잡아 가두려는 증오를 선택했습니다. 진리를 인식하는 지적 능력은 있었으나, 그 진리 앞에 자아를 꺾는 영적 용기는 없었던 것입니다.

 

복음의 등불은 이제 유대라는 울타리를 넘어 우리에게까지 닿았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의 수혜자이자, 각자에게 맡겨진 인생이라는 포도원을 가꾸는 새로운 농부들입니다. 성령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며, 우리가 '악한 농부'의 어리석은 길에서 돌이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당신의 삶은 누구의 것입니까? 주인이 언제든 찾아와 결산을 요구할 때, 당신은 기꺼이 내어드릴 '감사의 열매'를 준비하고 있습니까?

당신이 가꾸고 있는 오늘이라는 포도원, 그 열매를 기쁘게 드릴 준비가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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