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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1228 | 운영자 | 2026-01-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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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18:1-6절 개역개정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 어디에 임하는가?" 많은 이들이 품어온 이 질문은 오래전 바리새인들도 예수님께 던졌던 질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기다리던 메시아 왕국과 예수님이 가르치는 하나님 나라의 연관성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언제'라는 질문에 '어디에'로 답하시며, 질문의 핵심을 전환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이 대답은 동문서답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그들의 잘못된 선입관을 바로잡으시는 깊은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사실 '언제, 어디서'라는 질문은 단지 고대의 호기심이 아닙니다. 지난 이천 년 동안 수많은 이단과 사이비 종교가 등장하여 바로 이 질문들로 주님의 재림을 왜곡하며 사람들을 미혹해 왔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관점 전환은 오늘날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고 중요합니다. 1. 첫 번째 조건: 포기하지 않는 '믿음' "불의한 재판관도 귀찮게 만든 끈질김, 그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첫 번째 비유에서 두 인물을 등장시킵니다. 한 명은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불의한 재판장'이고, 다른 한 명은 사회적 약자를 대표하는 '과부'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과부가 자신의 원한을 풀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재판장을 끊없이 찾아가 조르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녀의 하소연을 무시하던 재판장도, 매일 찾아와 간청하는 끈질김에 결국 귀찮아서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합니다. 이 비유는 단순한 소원 성취 기도법에 대한 가르침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던 초대교회의 절박한 상황을 배경으로 합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과 로마의 박해로 수많은 순교자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교회 안에는 과부와 고아가 넘쳐났습니다. 주님의 재림은 더디게만 느껴졌고, 성도들은 "하나님은 왜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가?"라는 의심과 싸워야 했습니다. 과부의 '원한'은 바로 이러한 핍박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부르짖던 초대교회의 눈물 어린 기도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장도 끈질긴 요청에 응답했다면, 하물며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밤낮으로 부르짖는 자녀들의 기도를 외면하시겠냐고 반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실 것이니, 박해와 핍박 속에서도 무너지지 말고 오실 주님을 믿음으로 기다리라는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비유를 다음과 같은 강력한 질문으로 마무리하십니다.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여기서 말하는 '믿음'이란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결코 낙심하지 않고, 항상 깨어 기도하는 끈기 있는 자세.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믿음을 가진 사람, 그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첫 번째 주인공입니다. 2. 두 번째 조건: 자신을 낮추는 '겸손' "스스로를 의롭다 한 바리새인이 아닌, 죄인을 자처한 세리가 옳았습니다" 두 번째 비유는 스스로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사람들을 향한 가르침입니다. 성전에서 기도하는 두 사람, 바리새인과 세리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조됩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헬라어 원문의 뉘앙스를 살펴보면, 그는 단순히 따로 서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해서'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만, 그의 기도는 시작부터 방향이 잘못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세리와 자신을 비교하며 의로움을 자랑하는 '기도로 포장된 자기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반면 세리는 구석에 서서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는 자신이 공개적으로 인정받는 죄인임을 알고 있었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할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두 사람 중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인정받은 사람은 바로 세리라고 결론 내리셨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로움'이란 흠 없는 완벽한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리는 자신의 죄인 됨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들어갔습니다. 반면 바리새인은 금식과 십일조 같은 종교적 행위에도 불구하고, 그의 교만하고 판단하는 마음 때문에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지 못했습니다. 이 비유의 핵심 교훈은 다음 한 문장에 담겨 있습니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 하나님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를 구하는 겸손한 사람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바로 그런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습니다. 3. 세 번째 조건: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순수함' "복잡한 계산이 아닌,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마음" 예수님은 두 가지 비유를 마치신 후, 사람들이 데려온 아이들을 불러 모으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여기서 '어린아이와 같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복잡하게 따지거나 계산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순수한 태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바로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수용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 선입견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나라를 있는 그대로 기쁘게 받는 마음이 천국 시민의 요건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명확하게 선포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 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결국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오늘 살펴본 예수님의 가르침은 한 폭의 그림처럼 그 주인공의 모습을 그려냅니다. 그는 어떤 어려움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깨어 기도하는 믿음을 가졌으며, 자신의 의를 내세우지 않고 부족함을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복잡한 계산 없이 하나님 나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을 지녔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스스로를 높이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갈구하며, 끝까지 믿음으로 기도하는 겸손한 자"의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은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 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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