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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1221 | 운영자 | 2025-12-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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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17:22-25절 개역개정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23.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24.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25.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임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여전히 세상에는 질병의 고통, 전쟁의 소문, 죽음의 슬픔이 가득합니다. 이 간극 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묻게 됩니다. “주님, 그렇다면 주님의 나라는 언제 완성됩니까? 언제 다시 오시는 것입니까?” 누가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은 종말의 ‘시기’에 대한 호기심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에 대한 성찰로 바꾸어 놓으십니다. 그분이 밝히신 세 가지 놀라운 진실은, 종말론이 미래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은혜의 지침임을 깨닫게 할 것입니다. 본격적인 가르침에 앞서,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이 겪게 될 미혹에 대해 경고하십니다. 고난과 핍박이 깊어질수록 “그리스도가 저기 있다, 여기 있다”고 속삭이는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단호히 명하십니다.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주님의 재림은 결코 비밀스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번개가 하늘 이쪽에서 저쪽까지 번쩍여 온 세상이 알 수 있듯이, 그분의 다시 오심은 모든 인류가 동시에 목격하게 될 우주적이고 영광스러운 사건이 될 것입니다. 1. 영광의 왕은 ‘먼저’ 고난받고 버림받는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앞으로 겪을 혹독한 환난을 아셨습니다. 그들은 복음 때문에 핍박받으며 “주님의 날 하루만이라도 보고 싶다”고 간절히 부르짖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줄 영광스러운 정복자 메시아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기대를 완전히 뒤엎는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누가복음 17:25) 영광의 왕으로 다시 오시기 전에, 그분은 반드시 ‘먼저’ 고난과 버림받음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고난은 단순한 육체적 고통이 아니며, ‘버림받음’은 쓸모없다고 판단되어 내버려지는 철저한 거부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신비입니다. 십자가의 죽음 없이는 부활의 영광이 없고, 예수님의 버림받음이 없이는 우리의 구원도 없습니다. 2. 심판은 가장 ‘평범한 일상’ 한가운데 임한다. 예수님은 세상의 끝이 ‘노아의 때’와 ‘롯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비유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당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그들이 살인이나 강도 같은 흉악한 죄를 저질렀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았다고 기록합니다.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이러한 활동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상의 복입니다. 그런데 왜 이것이 심판의 배경이 되었을까요? 문제는 그들의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삶 속에 ‘하나님의 부재’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경고가 선포되는 중에도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았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오직 “오늘 점심은 뭐 먹지?”, “어디에 투자해야 할까?”, “자녀를 누구와 결혼시킬까?” 같은 현세적인 문제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3. 구원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에 달려 있다 마지막 날의 긴박함에 대해 말씀하시며, 예수님은 아주 짧고 강력한 경고를 던지십니다. 그날이 오면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의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고, 밭에 있는 자는 뒤로 돌이키지 말라고 하신 뒤,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롯의 처를 기억하라” 롯의 아내는 천사의 손에 이끌려 멸망의 도시 소돔을 빠져나왔습니다. 분명 구원의 대열에 합류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고, 결국 소금 기둥이 되어 심판을 받았습니다. 왜 돌아보았을까요? 그녀의 몸은 구원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소돔에 두고 온 화려한 재물과 안락한 삶, 세상의 가치에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론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세상의 끝에 대한 진리는 우리를 두렵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명확히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끝을 준비하는 우리의 신앙은, 고난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처럼 묵묵히 십자가를 통과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먹고 마시는 모든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마련하여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며, ‘롯의 처’처럼 미련과 집착으로 뒤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시민권을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성도에게 주님의 날은 공포의 날이 아니라 신랑을 만나는 ‘혼인 잔치’의 날입니다. 우리가 심판을 면하고 영광스러운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버려둠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 때문입니다. 이 모든 가르침은 결국 단 하나의 본질적인 질문으로 우리를 이끌고 갑니다.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오늘 하루를 믿음으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나는 지금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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