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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208 운영자 2026-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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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19:41-44절 개역개정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우리는 종종 화려한 겉모습에 매몰되어 그 이면에 숨겨진 본질을 놓치곤 합니다. 모두가 주인공을 연호하며 축제의 열기에 도취해 있는 순간, 정작 그 주인공만이 홀로 깊은 슬픔에 잠겨 있다면 그 광경은 얼마나 기묘한 부조화일까요.

 

성경 속 예루살렘 입성 장면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길 위에는 화려한 겉옷이 카펫처럼 깔리고, 공기 중에는 "호산나"라는 열광적인 환호성이 진동했습니다. 그러나 그 축제의 정점에서 왕으로 추대받던 예수님은 홀로 흐느껴 울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감격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일찍이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보이셨던, 가슴을 저미는 비통한 통곡이었습니다. 잔칫집 같은 분위기 속에서 터져 나온 이 무거운 침묵과 슬픔은 우리에게 세 가지 충격적인 진실을 일깨워줍니다.

 

군중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열광했던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압제라는 현실적 문제를 단숨에 해결해 줄 강력한 '정치적 메시아'를 원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백마를 타고 위풍당당하게 입성하셨다면, 그것은 다윗 시대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했던 그들의 욕망과 완벽하게 일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선택은 철저히 낮고 초라했습니다. 그분은 백마가 아닌 작은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이는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며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는 '겸손한 메시아'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였습니다.

"사람들의 기대와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겸손의 모습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었던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예수님이 이 오해 섞인 환호를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군중의 열광이 옳아서가 아니라, 그 착각조차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투영한 왕을 원했지만, 예수님은 인류의 근본적인 죄를 해결할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기대치의 간격'은 결국 며칠 뒤 환호가 저주로 변하는 비극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군중의 열정은 그 누구보다 뜨거웠습니다. 하지만 그 뜨거움보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방향'이었습니다. 자신의 선입견과 욕망에 눈이 가려지면, 바로 눈앞에 계신 하나님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집니다.

방향을 상실한 열심은 위험합니다. 그것은 구원자를 향한 찬양을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비명으로 바꿀 만큼 변덕스럽고 파괴적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첫 왕 사울의 사례와 닮아 있습니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한 후 좋은 짐승들을 남겨 하나님께 제사드리려 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자기 방식대로 해석한 '자기만족적 열심'에 불과했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 15:22)

하나님의 뜻과 어긋난 열심은 우리를 진리로부터 더 멀어지게 할 뿐입니다. 지금 나의 신앙적 열정이 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향한 것인지 다음의 4가지 질문으로 냉정하게 점검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며 통곡하신 가장 사무치는 이유는 곧 닥쳐올 심판을 예견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 비극의 원인을 한 문장으로 정의합니다.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이 구절을 직역하면 "하나님께서 너에게 오시던 때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란 하나님이 역사 속에 개입하시는 결정적 순간을 의미합니다. 구원의 기회가 눈앞에 선명히 제시되었음에도 예루살렘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기회를 스스로 밀어냈습니다. 평화의 길이 눈앞에 있었으나, 그들의 교만과 욕망이 그것을 보지 못하도록 가려버린 것입니다.

이 예언은 역사 속에서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다. AD 70,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이끄는 군대는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잔혹한 '기아 작전'을 펼쳤습니다. 성벽 바깥에 '토둔(흙 언덕)'을 쌓아 사면을 가두었고, 결국 예루살렘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라"는 말씀대로 완전히 초토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신 결정적 순간을 외면한 대가는 이토록 엄중하고 참혹했습니다.

 

2,000년 전 예루살렘의 통곡은 오늘날 우리 삶의 현장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성경 말씀, 간절한 기도, 예배의 자리, 그리고 일상의 예기치 못한 사건들을 통해 끊임없이 우리를 '방문'하십니다.

진정한 평화는 외부의 힘으로 상대를 압도할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내면의 죄를 직면하고, 견고하게 쌓아 올린 '교만의 토둔'을 스스로 허물어뜨리며, 나귀를 타신 겸손한 왕 앞에 무릎 꿇을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내 방식대로의 종교 활동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삶에 찾아오신 하나님의 방문을 예민하게 감지하십시오.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으며 느끼는 작은 찔림이나 울림이, 하나님이 당신에게 손을 내미시는 '보살핌의 날'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을 찾아온 평화의 왕을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맞이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욕망을 채워줄 왕을 기다리며, 정작 곁에 오신 진짜 왕의 눈물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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