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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0111 | 운영자 | 2026-01-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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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18:35-43절 개역개정35.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36. 무리가 지나감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37. 그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하니 38.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39.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0.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그가 가까이 오매 물어 이르시되 41.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42.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43.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누가복음 18장은 우리에게 익숙한 두 인물을 극적으로 대조하며 인생의 본질적인 가치를 묻습니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영생을 얻지 못하고 근심하며 돌아간 부자 관리, 그리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모든 것을 얻은 맹인 거지 바디매오. 우리는 흔히 부자 관리의 실패에 주목하지만, 정작 길가의 맹인 거지가 보여준 놀라운 믿음의 역설은 놓치곤 합니다. 오늘 맹인 거지 바디매오의 이야기 속에 숨겨진, 우리 인생을 뒤흔들 만큼 강력하고 역설적인 교훈을 함께 탐구해 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진짜 맹인은 누구인가? "진짜 보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실 때, 수많은 군중이 그를 따랐습니다. 그들은 두 눈을 멀쩡히 뜨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예수는 그저 ‘나사렛 예수’, 조금 특별한 선생일 뿐이었습니다. 심지어 3년을 함께한 제자들조차 그 순간 예수님의 정체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반면, 길가에 앉아 구걸하던 바디매오는 육신의 눈이 멀어 예수님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향해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람들이 '나사렛 예수'라고 알려주었지만, 그는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단순한 호칭의 차이가 아닙니다. 이것은 위대한 신앙고백이었습니다. '다윗의 자손'은 구약 성경이 오랫동안 예언해 온 바로 그 메시아, 구원자를 가리키는 칭호였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눈먼 거지가 예수님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을까요? 그는 아마도 예수님에 대한 소문들, 즉 병자를 고치고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문을 이사야 35장 5-6절의 예언,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라는 메시아에 대한 약속과 연결했던 것입니다. 육신의 눈은 떴지만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군중과 제자들, 그리고 육신의 눈은 멀었지만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본 바디매오. 이 역설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진짜 보지 못하는 '맹인'은 과연 누구일까요? 두 번째 방해는 믿음을 더 강하게 만든다. "‘조용히 하라’는 꾸짖음이 더 큰 외침을 만들었습니다." 바디매오가 간절하게 외치기 시작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그를 꾸짖었습니다. "조용히 해라! 시끄럽다!" 당시 장애인은 죄로 인해 저주받은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그런 부정한 자가 감히 거룩한 메시아의 길을 방해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바디매오는 사람들의 방해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외쳤다고 기록합니다. 사람들의 멸시와 꾸짖음은 그의 믿음을 꺾기는커녕, 오히려 더 간절하고 절박한 외침의 불쏘시개가 되었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장애물 앞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마치 개 취급을 받아도 물러서지 않았던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바디매오의 믿음은 거절과 방해를 뚫고 나아가는 끈질김 그 자체였습니다. 만약 그가 사람들의 꾸짖음에 위축되어 입을 다물었다면, 그의 삶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어둠 속에서 구걸하며 살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끈질긴 믿음이 결국 구원의 문을 열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가 당장 응답되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비난하고 조롱한다고 해서 주님을 향한 외침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믿음은 모든 방해를 뚫고 나아가는 끈질김에서 증명됩니다. 세 번째 가장 바쁜 그가 당신을 위해 멈춘다. "세상을 구원하러 가던 길을 멈추게 한 한 사람의 외침"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길은 평범한 여정이 아니었습니다. 그 길은 인류 전체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러 가시는, 가장 긴박하고 중대한 사명의 길이었습니다. 온 세상의 운명이 걸린 발걸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길 위에서, 인류 구원이라는 거대한 사명을 향해 가시던 예수님이 이름 없는 한 맹인 거지의 외침에 발걸음을 '멈추셨습니다'. 그리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를 데려오라." 그 순간, 놀라운 역전이 일어납니다. 불과 몇 초 전까지 바디매오를 꾸짖고 침묵시키려던 바로 그 군중이, 이제는 그를 예수님께 인도하는 조력자로 변한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 한마디가 상황을 완전히 뒤바꾸어, 방해하던 자들을 돕는 자들로 바꾸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 영혼의 외침 앞에 모든 것을 멈추시고 상황을 주관하시는 예수님의 권능과 사랑입니다. 당신의 작은 신음에도 온 우주를 멈추시는 분, 그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예수님입니다. 네 번째 과거를 버려야 미래를 얻는다. "모든 것을 버렸을 때,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바디매오는 즉시 반응합니다. 성경은 그가 "겉옷을 내버리고" 예수님께 달려 나아갔다고 기록합니다. 이 행동에는 엄청난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당시 거지에게 겉옷은 단순한 옷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밤에는 추위를 막아주는 이불이었고, 낮에는 뜨거운 햇볕을 가리는 그늘막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그의 '전 재산'이자 유일한 안전판이었습니다. 그 겉옷을 '내버렸다'는 것은, 자신의 과거와 비참했던 삶, 그리고 마지막 남은 최소한의 안전장치까지 모두 버리고 오직 예수님 한 분께 모든 것을 걸겠다는 믿음의 결단이었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그물을 버리고, 마태가 세관을 버리고 예수를 따른 것과 같은 차원의 결단입니다. 바로 앞서 등장했던 부자 관리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는 자신의 많은 재물, 즉 화려한 '겉옷'을 버리지 못해 영생의 길 앞에서 근심하며 돌아섰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남루한 겉옷 하나를 버림으로써 눈을 뜨고, 구원을 얻고, 새로운 인생을 얻었습니다. 모든 것을 버렸을 때, 비로소 모든 것을 얻게 된 것입니다. 다섯 번째 진짜 기적은 눈을 뜬 것 너머에 있다. "예수님은 그의 눈이 아닌, 그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마침내 바디매오 앞에 서신 예수님은 선포하십니다.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고쳤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선포하신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물론 바디매오는 즉시 시력을 회복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주신 것은 육체의 치유를 훌쩍 뛰어넘는, 영혼의 구원이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기적의 본질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망가진 눈이 아니라, 그 안에 있던 온전한 믿음을 보셨고 그 믿음에 구원으로 응답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사역에서 반복되는 패턴입니다. 그분은 발에 향유를 부은 죄 많은 여인에게,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에게, 이방인이었던 사마리아 나병환자에게도 똑같이 선포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사회적으로 버림받고 자격 없다고 여겨지던 이들, 바로 그들이 믿음 하나로 구원받는다는 것, 이것이 복음의 심장입니다. 구원받은 바디매오가 눈을 뜨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랐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자의 합당한 삶의 모습입니다.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제는 그분을 따르는 제자의 길을 걷는 것. 이것이 진정한 구원의 열매입니다. 맹인 거지 바디매오의 이야기는 단순히 2천 년 전 한 사람의 기적 이야기가 아닙니다. 육신의 질병, 마음의 상처, 관계의 아픔, 미래에 대한 두려움, 죄의 짐이라는 각자의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바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진짜 봐야 할 것을 보았고(영적 시력), 방해에도 굴하지 않았으며(끈질김), 가장 바쁘신 분을 멈추게 했고(한 영혼의 가치), 과거를 과감히 버렸으며(결단), 결국 치유를 넘어 구원을 얻었습니다(믿음의 본질). 오늘, 예수님이 당신의 삶이라는 여리고 길가를 지나가고 계십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말고, 환경이 어떠하든 멈추지 마십시오. 바디매오처럼 외치십시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은 반드시 당신의 외침에 멈추어 서서 물으실 것입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그때 담대히 고백하십시오. 당신의 인생을 뒤흔드는 가장 위대한 기적은 바로 그 고백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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