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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전교인 새벽기도회 운영자 2025-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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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9:1-12절 개역개정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8.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10.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12. 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증거합니다.

9장은 한 맹인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증거하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많이 왕래하는 곳에 맹인이 앉아 구걸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입니다그런데 제자들은 이렇게 길에서 구걸하는 맹인을 바라보면서 아주 엉뚱한 질문을 합니다. 이 사람이 맹인 된 것이 누구 죄 때문입니까?

제자들은 이 사람이 맹인이 된 이유를 어떤 죄에 대한 형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주님은 먼저 이 사람이 맹인 된 이유가 본인의 죄도,

부모의 죄도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서 맹인이라는 큰 불행이 꼭 특정한 죄에 대한 형벌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간혹 아픈 교인 가정에 심방을 하면 이런 말을 해요내가 무슨 죄가 많아서 이렇게 아픈지 모르겠다고.

우리는 인생에 무슨 일이 생기면특히 나쁜 일이 생기면 죄와 벌의 논리로 접근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불행은 형벌적인 의미만 있는 게 아닙니다그 이상의 숨은 뜻이 있습니다.

 

오늘 주님은 내게 말씀하십니다너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여러분, 우리는 각자 하나님이 주신 삶의 목적이 있습니다.

심지어 내가 어떤 불행을 타고났다 할지라도그 불행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고, 하나님을 보여 주는 계기가 됩니다내가 현재 가진 모든 조건은 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한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경이나 조건에 낙심치 말아야 합니다.

가난하다고 낙심 말고, 몸이 불편하고 병들었다고 낙심하지 마세요.

사업에 실패했다고 낙심 말고, 시험에 떨어졌다고 낙심하지 마세요.

아무려면 맹인으로 태어나서 구걸하며 사는 사람만큼 불행합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환경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불행의 원인을 생각하기 전에 인생의 목적을 생각하세요.

하나님께서 왜 나의 삶에 이런 일을 주셨을까?

오늘 내가 당하는 불행은 무슨 일을 이루려는 계획이 있을까?

 

그러면 오늘 맹인을 통해서 이루려는 하나님의 일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첫째로는 이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내는 일입니다.

둘째로는 구원의 빛인 그리스도를 세상에 드러내는 일입니다.

 

본문의 맹인은 눈을 떴습니다.

보이지 않던 세상을 보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격입니까?

이렇게 이 맹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눈을 뜬 것은 구원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 맹인은 눈을 떴지만, 아직 영의 눈은 뜨지 못했습니다.

자기 눈을 뜨게 해 주신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은 이 사람이 완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일을 시작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맹인이 눈을 뜨고 하나님을 경배하게 된 일, 하나님을 증거하는 인생이 된 일,

이것이 바로 맹인의 인생에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던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자녀가 돼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이적입니다.

이런 일을 통해서 하나님은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러한 이적이

우리 자신에도 나타나게 되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은 때가 있습니다. 아무 때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9: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낮에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낮이란 언젭니까?

9: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여기서 낮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이며 밤은 고난의 시간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져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으므로 어서 구원을 전파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머물러 있을 때는 어두움을 밝히는 빛입니다.

예수의 임재로 질병이 물러가고 귀신들이 쫓겨 나갔고 사악한 죄들이 사함을 받았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세상은 영원한 생명으로 소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그러므로 죄악의 어두움에 속한 자들이 빛으로 나아온다면 영생을 얻게 되지만, 빛을 미워하고 어두움을 더 사랑한다면 심판으로 나아가게 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떠나시면 혼란이 오고, 영적 암흑이 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계실 동안에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4 말씀에는 두 가지 강조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내가 홀로 하겠다고 하지 않고,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일,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우리 공동의 사명입니다.

목사만의 사명이 아닙니다. 성도들 모두의 사명입니다.

둘째로, 영혼 구원은 시한부 사업이라는 사실입니다.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4)

 

예수님은 스스로 빛이므로 언제나 하나님의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우리는 예수가 계신 동안만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빛이 있는 동안은 정말로 잠시뿐이며

사람을 구원하는 일은 매우 긴급한 일인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춰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눈이 밝아서 영적 세계를 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러나 역사의 종말은 가깝습니다.

역사가 얼마나 지속될는지, 언제 불현듯 마감될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때가 오기 전에 우리는 부지런히 하나님의 구원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주님이 맹인을 어떻게 고치셨는지 살펴봅시다.

주님은 먼저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셨습니다.

왜 진흙인지, 왜 침을 뱉었는지, 왜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셨는지

일일이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모든 치료는 결국은 하나님 소관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는 말씀에 참 의미를 찾아보면

실로암이란 히브리 말로 보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요한은 언제나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이 보내신 분으로 소개합니다.

그러므로 실로암 못이 상징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분 곧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실로암 되신 예수님께 가서 씻으라,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러면 영의 눈을 뜨게 된다는 메시지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실로암이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를 씻어내고, 영적인 눈이 떠지고,

인생의 모든 길이 밝히 드러납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여러 가지 반응들이 나타났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구걸하던 맹인이 눈을 떴다고 놀랍니다.

그리고 이 눈뜬 맹인에게 재미있는 질문을 합니다.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10)

누가 눈을 뜨게 만들었느냐고 묻지 않고 어떻게 떠졌느냐고 묻습니다.

눈을 뜨게 만든 주체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맹인 역시 마찬가집니다.

이 사람은 11절에 보면 아직 예수를 그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즉 예수님이 메시아인지를 모른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어떻게 눈을 떴느냐?”가 아닙니다.

누가 눈을 뜨게 했는가? 그리고 그는 누구인가?

이 중대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러나 군중들은 예수에 관한 관심보다 눈뜬 맹인에게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눈을 뜨게 하신 목적을 찾지 못하고 눈을 뜬 수단만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목적은 눈을 뜨게 하신 예수님을 알게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입니다.

주님께서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신 이유는

그가 영의 눈을 떠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 인생에 일어난 최대의 사건은 내가 구원받아 하나님 자녀가 된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구원의 사건을 통해서 주님을 나타내고, 하나님을 나타내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라기는 이 새로운 한 달, 아직 예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하고 보지도 못한 분들은 예수님 만나 눈을 뜨고,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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