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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로 변질시키는 가짜 복음 운영자 2025-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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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yesung.ne.kr/bbs/bbsView/59/6514485

진짜 복음 vs 가짜 복음: 은혜를 잃어버린 신앙

 

**서론: 은혜로 시작했지만, 종교로 변질되는 현실**

 

사다리 비유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노력(종교)으로는 결코 하나님께 도달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은,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를 의롭게 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우리의 죄에 대한 사망 선고이며, 우리는 무죄 판결을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사탄은 우리에게 다시 사다리를 들이밀며 유혹합니다.

"이제 구원받았으니, 이 사다리를 올라가서 하나님을 만나봐!"

이는 은혜를 잊고, 다시 행위와 조건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잘못된 시도입니다.

 

**본론 1: 갈라디아서의 경고 - '다른 복음'의 위험**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전도하며 교회를 세웠지만, 얼마 후 그들에게 이상한 소식이 들려옵니다. 바로 "예수님만 믿어서는 불안하니, 할례도 받아야 구원이 완성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할례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증거로 여겼고,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를 강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를 '다른 복음'이라고 강력하게 책망했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예수님만으로 충분합니다. 다른 어떤 것도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본론 2: 사탄의 끊임없는 유혹 - 종교로의 회귀**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 신앙을 공격하며, 은혜의 크기를 잊게 만들고 종교화시키려 합니다. 종교화된 복음은 은혜가 아닌 '보상'에 관심을 갖게 합니다.

 

* **은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물. 하나님이 주고 싶으신 것을, 주고 싶으신 때에, 주고 싶으신 사람에게 주시는 것.

* **종교적 신앙:** 어떻게든 하나님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 노력.

 

욥의 이야기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사탄은 욥의 믿음이 진정한 은혜에 근거한 것인지, 아니면 보상에 근거한 종교적인 것인지 시험합니다. 사탄은 욥의 소유물을 공격하며 하나님을 떠나게 하려 하지만, 욥은 믿음을 잃지 않습니다.

 

**본론 3: 은혜를 사라지게 하는 유혹들**

 

복음이 진정으로 기쁜 소식이 되려면,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 깨닫고,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십자가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라고 말합니다.

 

* **상대적인 의로움:**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길 때, 은혜의 크기가 훼손됩니다.

* **기독교 vs 종교:** 기독교는 윤리나 도덕 교과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원자임을 알게 하는 진리입니다. 윤리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후순위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고백하고 붙잡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종교인들은 회개하기보다는 변명하고 죄를 감추려 합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지킬 수 있는 수준의 율법을 정하고, 마치 모든 율법을 지킨 사람인 양 위선을 떨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마음속의 죄까지 드러내시며, 여전히 구원자가 필요한 존재임을 선언하셨습니다.

 

**본론 4: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종교화**

 

교회 안에서도 헌신을 강요하거나, 평가표를 만들어 상벌제도를 운영하는 등 타율적인 요구사항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내가 하는 헌신이 정말 은혜에 감격하여 드리는 자발적인 것인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분위기에 떠밀려 하는 것인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교회 안에서 지쳐 쓰러져가는 성도를 설명하는 번아웃이라는 용어는 너무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더 큰 문제는 번아웃 상태가 되더라도 교회 안에서 요구하는 일들을 다 해내는 사람을 능력자처럼 여기며 교회의 일꾼이나 헌신자인 양 평가하는 문화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를 축소하려는 어떤 노력이나 시도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은혜였다는 순도 높은 신앙고백만을 요구하십니다.

 

**유치원 효도 교육의 비유:**

 

* **첫 번째 유치원:** 해야 할 일을 교육 -> 시간이 지나면서 지쳐갔고 힘들어했으며, 효도가 이렇게 힘든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생기고 심지어 강박까지 느꼈습니다.

* **두 번째 유치원:** 부모님의 사랑을 보여줌 -> 부모님에게 사랑한다는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충분히 경험하게 한 후에, 사랑받는다는 안정감 안에서 하나씩 배워 가야 합니다. 급하게 열매 맺게 하려는 마음이 오히려 해로운 신앙을 만들 수 있습니다.

 

**결론: 날마다 은혜로 돌아가라**

 

우리는 날마다 은혜로 돌아가야 합니다. 은혜만을 강조하면 마치 행함을 강조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은혜는 결코 행함과 떨어져 생각할 수 없습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그리스도는 우리를 다시금 율법으로 보낸다"라고 말했습니다. 율법은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며, 우리 안에 여전히 도사리고 있는 악함을 보게 합니다. 내 힘으로는 그 악함을 이길 수 없기에 율법을 통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 보아야 함을 알게 됩니다. 은혜만 받고 멈추는 것 또한 반쪽짜리 신앙입니다. 은혜받은 성도는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 은혜받은 자다운 삶을 당당히 요구받아야 합니다.

 

코끼리와 개미 이야기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죄의 짐을 내려놓고 예수 십자가 그늘에서 쉼을 얻길 원하십니다. 은혜가 우리를 자유인으로 회복시키고 그 자유함으로 하나님과 세상을 섬기길 원하십니다. 기독교는 의무의 짐을 지우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우리를 자유케 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시작도 은혜요, 마지막도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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